D-WAR는 절대 스토리가 부족한 영화가 아니다.

(c) 영구아트무비 2007
(그림출처: NAVER)



요즘 최고의 화제작(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인 '디워'를 지난 주 금요일에 보고 왔다.
솔직히 말해 디워를 보러 가는 내 마음은, 옛날 '원더풀 데이즈'를 보러 갈 때의 마음보다 조금 더 평온한 정도였다.
원더풀 데이즈를 보러 갈 때는 어땠냐고? 그야 뭐…

"보고 나서 당당하게 씹어주마."

였지.
그에 비해 디워를 보러 갈 때는…

"일단 보고 나서 얘기하자."


정도?

아무튼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영화를 관람했다.

이 건방진 생각은, 조선시대 장면에서 아트록스군이 쳐들어오는 장면의 첫 포격씬에서 싹 날아갔다. 삐딱하게 기대 있던 마음가짐을 정좌시킨 후 다시 영화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남주, 여주'가 등장하자마자 날아갔던 건방진 생각 부활.


너희는 이따 영화 끝나고 나 좀 보자.



이 커플, 디워에서 두 번째로 심각한 문제로 꼽고 싶다.

영화는 중반으로 들어와서, 다시 미국 이야기. 주요 등장인물도 웬만큼 나오고, 스토리는 막바지를 향해 치닫는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던 것과는 달리, 의외로 이 영화는 스토리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히려 스토리가 넘쳐나서 문제가 될 지경이었다. 이 이야기는 결론에서 다시 말하기로 하고.

그보다 미국편 남주랑 여주!
디워에서 제일 큰 문제는 너희들이야! 그런고로…


너희도 이따 같이 면담이다.



아무튼 영화는 그렇게 끝나고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훌렁훌렁)
이 영화에 대한 몇 가지 감상을 남길 수 있었다.


1. 스토리의 과부하
처음에도 말했듯, 이 영화는 절대로 스토리가 부족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스토리에 개연성을 넣기 위해 추가한 장면들이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 시원시원하게 흘러가야 할 액션 시퀀스들 - 즉 도심파괴씬(괴수영화에서 이거 중요), 추격씬 등이 이런 장면들에 가로막혀 되려 영화를 보는 데 방해가 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는 심형래 감독의 스토리 피해의식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용가리 때부터 그놈의 스토리에 대해 얼마나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는가. 우리나라 영화판의 고질적인 문제, 그놈의 스토리. 제작자건 관객이건 평론가건 영화기자건 입만 열면 스토리 스토리. 대체 트랜스포머에서, 디워에서, 다이하드에서 왜 그놈의 스토리를 들먹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이 '스토리 증후군'을 영화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화 컨텐츠 전반에 걸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모든 문화는 교육적이거나 공익성이 있거나 사회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겉으로 보기에 고상하고 뽀대나야 한다. 즉 '뭔가 남는 게 있어야 한다'는 지독한 컴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선 후에 다시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를 가지고 싶다.

이야기가 좀 많이 샜는데, 결국 디워에서 부족한 건 스토리가 아니라 구성이었다. 과도하게 들어간 개연성을 시원시원하게 잘라내고 액션 시퀀스로 깔끔하게 이어주었으면 훨씬 완성도가 살아났을 것이다.


2. 이 영화에서 첫째와 둘째로 손꼽히는 문제: 지독한 연기실력.
조선편 주연 둘, 미국편 주연 둘. 안그래도 구성 때문에 몰입감이 떨어지는 비 액션 시퀀스들을 한 발짝 더 물러나서 보게 만드는 그 연기는 정말… 어떤 의미로는 압권이었다.

사실 이는 심형래 감독의 부족함일 가능성이 크다.
배우가 연기를 못하는 게 왜 감독 잘못이냐고? 그렇지 않다. 배우의 연기는 감독의 연기지도를 통해 상당부분 향상될 수 있다. 그 좋은 예가 '올드보이'다.

올드보이 이전에 유지태가 출연했던 영화들을 본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는 절대로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아니었다. 하지만 올드보이에서 유지태가 보여준 연기는 예전 그의 출연작들을 싹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훌륭했다. 유지태의 연기실력이 늘어서? 아니다. 그 다음에 찍었던 '내추럴 시티'를 보면 다시 그의 본 실력이 드러난다(…).
올드보이의 '유지태 배우 만들기'는 DVD의 스페셜 피처에 잘 드러나 있으므로 관심 있는 사람은 꼭 보도록.

비슷한 예로 일본영화 '배틀로얄'이 있다. 침대에 팔꿈치를 괴는 각도 하나만으로도, 연애감정을 고백하면서 부끄러워하는 소녀의 심경을 죽이고 살리는 그 세세한 연기지도에는 '과연 거장'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이것도 DVD 스페셜 피처에 나오는 장면이니 찾아 보면 좋을 듯.

그나마 얘가 연기가 좀 되더라. 하는 일이 별로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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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고 수준의 액션
정말 최고 수준이란 말은 과언이 아니다. '이만하면 잘 만들었네'가 아니라, '약간의 아쉬움이 있는 최고 수준'이다. 사실 저 '아쉬움'도 어쩌면 개인차가 있을지 모르겠다. Saga는 근대화기의 공격에도 굴하지 않는 이무기가 터미네이터처럼 마구 몰아쳐대는 모습을 바랬던지라, 이무기가 약간씩 머뭇머뭇한다거나, 미군 탱크가 주포를 쏘지 않는다거나 할 때마다 좀 답답함을 느꼈다. 게다가 위에서도 말했듯, 구성상의 문제 때문에 액션 시퀀스들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아 긴장감이 자꾸 다운되는 감이 있었다. 호쾌하긴 해도 아기자기한 맛은 떨어지고 공간감이 느껴지지 않는 문제도 있다만, 이건 정말 개인차일 수 있으니 넘어가자.

하지만 액션씬을 개별적으로 놓고 봤을 때는 정말 훌륭했다. 특히 이제까지 전례가 드문 '뱀형 괴수'가 시내를 휘저으면서 파괴하는 장면에선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이것이야말로 괴수영화의 백미 아니겠는가. 도심 파괴! 이 장면을 만들기 위해 심형래 감독이 아놀드 주지사님과 쇼부를 쳤다니, 그는 역시 뭔가 알긴 안다. 참고로 Saga의 고등학교 대선배님이다(…).

트레일러의 일부. 이보다 훨씬 호쾌한 액션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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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애국심이나 민족성에 호소하지 말아줬으면 했다.
솔직히 말하건대, 마지막 엔딩 크레딧 부분에서 심형래 감독의 코멘터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엔딩 크레딧을 보지 않을 생각까지 했다. Saga는 영화광은 아니지만, 엔딩 크레딧은 영화의 일부라는 생각에 언제나 이를 끝까지 보고서야 나간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엔딩 직후, 크레딧 올라가기 전에 팍 들어가 있더라. 그것도 아리랑 나오는 부분에서. 쓰파…
제발 영화는 영화로만 평가하게 해 달라.

이와는 별개로, 아리랑은 훌륭한 선곡이었다고 생각한다. 편곡도 좋았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옛날 'Remo: Unarmed And Dangerous'에서 나왔던 락 버전 아리랑에 버금가는 엔딩곡이 아닌가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아까 면담하자고 했던 너희 넷!

가서 이무기님한테 연기 지도 받고 와!!


이게 지금 이무기한테 겁먹은 표정이냐, 동네 아저씨한테 꾸중 듣는 표정이냐?!


 

Saga

by Saga | 2007/08/06 15:14 | 트랙백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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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tocky at 2007/08/06 18:18
재미난 글이군요. ^^ 디워는 몇몇 A급 요소와 다수의 Z급 요소가 어울린
즐거운 괴작(?) 이라고 봅니다. 저도 그렇고 다른 분들의 평도 그렇고,
스토리는 의외로 평탄하고 괜찮은 수준인데 그놈의 발연기와 어처구니없는
전개가 난감했죠.. 저녁먹고 한번 더 볼 참입니다. -_-;;;
Commented by 메모선장 at 2007/08/06 20:51
이렇게 보니까 이든 표정이 참 ... 잘 보고 갑니다!
Commented by 『한군』 at 2007/08/06 20:52
그 '스토리 증후군'의 실체가 있는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디 워]에 대한 평론들은 스토리 자체를 탓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거든요. 오히려 평론에서 [디 워]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건, 스토리를 풀어가는 연출력 쪽이 아니었나요?
Commented by 『한군』 at 2007/08/06 21:00
[디 워]의 스토리가 지적되는 건 주로 전문가들의 평론 보다는 'CG는 좋지만 스토리는 구리다.'는 식의 일반인들의 한줄짜리 감상이죠. 이게 [디 워]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기도 하고요. 이 일반인들의 전반적인 인식을 전문가들의 평으로 떠 넘겨 '스토리 증후군'을 언급하는 건, 글쎄요. 좀 경우가 들어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Commented by 낭만원숭이 at 2007/08/06 21:18
전 d-war를 두번 봤는데 제 기억으로는 탱크 주포를 쐈던거 같은데ㅔ..흠..아닌가요 (-_-a;;

그리고..조선시대 남주,여주는 연기 정말 못하더군요..후..
개인적인 생각으로 조선시대씬에서의 히로인은 그..아주머니 한분이신데요.

"어..어깨에 용문신 있는 여자 찾는거죠? 제가 어딨는지 알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 . . ]
Commented by Saga at 2007/08/07 09:30
tocky/ 저는 어제 한번 더 보고 왔습니다. 이젠 머리 속에서 각색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있네요. 클라이막스 직전에 뻘쭘했던 FBI 요원이 사실은 나린을 짝사랑했던 다른 호위무사의 후생이라든가. (...)

메모선장/ 그쵸, 절묘하죠. (...)

『한군』/ 디워의 스토리에 대한 지적은 주로 개봉 전 시사회를 보고 왔던 기자들이 많이 했던 이야기입니다. 이 부분을 찾아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꼭 디워에 대한 평론에서만 '스토리 증후군'을 언급했던 건 아닙니다. 트랜스포머에서도, 다이하드에서도 늘 따라다니는 이야기였죠. 본문을 다시 읽어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네요. ^^;

낭만원숭이/ 어제 다시 보니 두 번쯤 쏘더군요. 저는 기관포 쏘는 만큼 주포를 쏴줬으면 해서. 이동사격도 좀 하고. ^^;
조선시대 그 아주머니... 저도 기억납니다. 그리고 더들러 앞에서 엉엉 울던 여자애도(한 1초쯤 나왔나).
Commented by amish at 2007/08/07 10:44
리모.. 그 영화를 기억하시는분이 계셨군요.^^ 시난주(신안주)의 무예. ㅋ. ㅎㅎ. 디스트로이어라는 작품이 원작이었지요..

그걸 기억하시는분이 있다니 싶네요 저도 이번에 아리랑 이야기 듣고 그게 떠올랐거든요.
Commented by 황금숲토끼 at 2007/08/07 12:54
리모 팬입니다. 국민학교 학년 때였을 거예요. 왜 후속편이 안 나오나 분해 했었죠.

늑대군, 전반적인 평에 강렬한 찬성. 난 영화는 안 보고 자세한 줄거리를 읽은 편인데, 2시간 30분짜이 영화 2-3편이 나올만한 이야기였어(.............) 거기서 가지 다 쳐내고 핵심 줄거리를 영상만으로 끊어버렸어도 좋았을 듯 한 기분이...
Commented by 루나 at 2007/08/07 20:09
...두 나라다 남주 여주는 면담 좀 심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Commented by ㅈ사구 at 2007/08/07 20:32
아, 제 감상과 거의 일치하는 훌륭한(?) 감상문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우리 모두 다같이 면담을(....)
Commented by Saga at 2007/08/08 03:43
amish/ 리모 아주 좋아합니다. 제가 좀 뽕빨 B급에 열광해요. ^^;

황금숲토끼/ 아까도 얘기하면서 느낀 거지만, 사실 정말 기본 스토리만 가져갔으면 충분히 먹어줄 만한 영화였는데...

루나/ 우리들의 부라퀴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ㅈ사구/ 졸문에 과찬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망콘콘 at 2007/08/08 05:09
떡밥강화
Commented by 악플전용 at 2007/08/08 23:22
걍 옥수수나 삶아드세요
Commented by 미미르 at 2007/08/09 18:22
부라퀴가 짱이죠 -ㅁ-)乃....
링크했어요!
Commented by 여우 at 2007/08/09 23:34
마지막 말에 올인하고 갑니다 ㄲㄲㄲㄲㄲ배우들 연기력은 정말....아놔. 근데 뭐 부라퀴가 그만큼 멋있어서 허허허허<-
Commented by Dataman at 2007/08/10 04:30
4. 엔딩 크레딧 -> 동감합니다.
오히려 뭔가 감동을 먹을 수도 있던 게 용과 함께 승천하더군요.
Commented at 2007/09/12 14:3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단풍나무 at 2007/09/13 23:48
... 아니 사실 <스토리증후군>이 있지요. 암 있고말구요. 예술인이라면
모두가 있지않을까요..!!!
네칸만화를 그려도 심오한 교훈을 줘야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 한때 모든것에 다 반전이 들어가야하나 라는 반전돌풍까지 일어났었고..
심형래감독은 스토리지적까지 들었을테니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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