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8월 02일
정보의 도적
어렸을 때 읽었던 이야기에서 의적과 도적을 구별하는 것은 간단했다. 백성들의 평가? 중요하지 않다. 도적들이 의적 흉내낸답시고 훔쳐온 재산 중 일부를 백성들에게 나누어준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으니까. 벼슬아치들의 평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무엇을 보고 구별하냐고? 그건 바로 도둑질을 할 때 그들 자신이 하는 말이다.
의적: (묶인 채 벌벌 떠는 탐관오리를 보며) "너는 지난 가을 흉년 때 나랏님께서 내려주신 구휼미를 횡령해 자기 배만을 채웠으며, 그것도 모자라 이를 고리로 백성들에게 빌려주며 고리의 이자놀음을 하였고… (이후 구구절절 소상한 조사결과를 까발린 후) 따라서 너의 죄 백 번 죽어 마땅하나, 너 또한 나랏님의 명을 받들어 이 곳에 부임한 자이니 너를 베는 것은 나랏님을 거역하는 일이로구나. 따라서 네가 백성들에게 빼앗은 재물을 백성들에게 돌려준다면 목숨만은 빼앗지 않을 것이다."
(…지금 든 생각이지만, 의적질하기도 꽤나 힘들구나. 거의 탐정 수준의 조사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임꺽정이나 장길산도 늘 부하들을 파견해 탐관오리들의 뒤를 캐고 다녔다)
그럼 도적들은 어떻게 하냐고? 간단하다. 조사 뭐 이런 거 없다. 그냥 있어보이는 집 냅다 문 부수고 들어가서 약탈하고 강간하고 있는대로 칼질한 다음, 시체에서 피묻은 칼을 뽑으며 이렇게 말한다.
도적: "케케케, 그동안 많이 버셨다며? 같이 좀 나눠 먹자고!"
요즘 저런 놈들 너무 많이 보인다.
포토샵 하나에 80만원이 말이나 되냐고 와레즈 합법화를 주장하던 고등학생,
한 번 보고 말 소설책 만화책을 비싼 돈 주고 사는 사람들은 오타쿠라는 비디오가게+대여점 주인,
소비자는 항상 편하고 값싼 매체를 택하게 마련이니 와레즈와 P2P와 웹하드가 범람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라는 뜨내기 경영학과 출신,
'이윤은 잡지에서 다 뽑아먹고 있으면서 단행본 안 팔린다고 엄살 피우지 말라'는 무식한 논리로 대여점 논쟁의 종식을 부르짖던 자칭 만화 평론가,
요즘 뜨는 그 영화 다운 받아 봤는데 재미도 없는 걸 왜 극장 가서 보냐고 이죽거리는 자칭 영화 마니아,
내가 사랑하는 만화 모두 함께 보고 홍보하고 싶어 스캔본 올렸는데 그게 불법이냐고 핏대 세우는 자칭 만화 마니아,
난 외국 게임은 복사하지만 국산 게임만은 돈 주고 산다는 자칭 애국 게이머...
예를 들자니 끝이 없을 정도다.
저작권법이 개판이란다. 미국 놈들은 FTA를 앞세워 저작권 유효기간을 슬금슬금 늘려 부를 축적한댄다. 있는 놈들이 더한단다. 다 맞는 말인데, 그래도 그걸 뺏는 놈들은 도적이다. 정보공유를 주장하고 싶다면 스스로 정보를 만들어 봐라. 찌질하고 값어치 없는 정보 말고, 너희들이 다운 받고 싶어할 정도로 귀중한 정보를.
# by | 2007/08/02 10:51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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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윗글을 읽고 저도 조금 양심에 찔린다는...(뜨끔)
스캔본이나 다운받는 영화, 게임하곤 연이 전혀 없지만...대여점은...가끔 드나드는 편이라...
한국만화의 발전을 위해서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든 만화를 다 사들이질 못해서요...(비굴 변명ㅠ.ㅠ) 뭐 원래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놈이긴 하지만요.
포토샵 하나 80만원? 그 프로그램을 몇명이서 몇년동안 무슨 기술로 만들었는지 알면 그런 말 안 할 텐데요.
결국 문화에 가치를 부여하는데 인색한 한국.
그냥 꾹 참고, 열 번 빌려보실 거 한 번 사신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질 높은 만화들이 평가받으면서 살아남는 거겠죠. 사실 가난한 학생들에게까지 '만화책 사서 봐라'라고 강요(?)하는 게 안 좋아 보일 수도 있지만, 제가 어렸을 때 반 친구들이 계조직 비슷한 것까지 만들어 가면서 잡지나 만화를 사서 봤던 걸 생각하면 꼭 방법이 없지만은 않을 겁니다.
아르비드/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
결국은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나중에 학습만화 스토리를 쓰게 된다면 저작권 얘기를 꼭 한번 해 볼 겁니다.
문화에 대한 가치부여에 인색하다는 점은 크게 공감.
dcdc/ dcdc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도 FTA 때 저작권 관련 문제 개정이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걸 보고 씁쓸해했으니까요. ㅡㅜ 하지만 그걸 '무시'해버리면 정말로 일반 창작자들의 권리마저 함께 날아가 버릴 겁니다.
저작권법이 제대로 확립되어, 결국엔 진짜 실력자들이 살아남고, 아울러 소수시장도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문화시장이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네이버는 거의 관리 안하시다가 다시 귀환하셨군요.
이러다가 저작권으로 크게 피볼 나라인데 말입죠..
네이버도 슬슬 관리에 들어갈 생각입니다만... 또 얼마나 갈지 아하하하;
1, 2차 산업으로 재미 보던 시절은 이제 다 지나갔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낡은 가치만을 주장하고 있을 건지 참 걱정입니다. 자칫하면 그대로 문화적 속국이 되어 버리는 건데 말이죠...
이제 한국의 집을 처분하면 한국에 다시 돌아오기 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군. 그동안 신경써주고 염려해준것 정말 고맙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다시 돌아올때까지도 몸건강하고, 건승하며, 좋은 2세 소식이 있길 빌겠음 ^^
P.s 위엣건 동일하겠지만, 해외에서도 형의 번역작 볼수 있도록 노력 해보겠음 ^^ 흐흐흐
미 본토에서 중고 포샵CS2 40만원대에 구입가능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