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왜 프로레슬러들은 링 포스트 위에서 자길 덮치려는 적에게
일부러 다가가나요? 혹시... 미리 짜놓고 싸우기 때문에 그런 건가요?"
"멍청한 놈!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지 마라!"
- 시마모토 카즈히코: '불타는 여자 프로레슬링'에서 -
내가 매사에 의문을 품을 때, 언제나 머릿속으로 한번씩 돌이켜 보는 명언이다.
저 청년은 왜 스무 살밖에 안 됐으면서 80 먹은 할머니와 결혼을 했을까?
저 사장은 어떻게 몇 달만에 저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까?
저 고양이는 어떻게 20kg가 넘는 몸무게를 가질 수 있었을까?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뉴스들을 읽다 보면 누구나 가질 법한 의문들.
덧글을 읽어보면 그 중의 반 이상은 이런 이야기들이다.
"할머니가 엄청 부자겠지. 몇 년만 참으면 그 재산 다 자기 거 되잖아."
"세금 떼어먹고 부정축재했겠지 뭐. 기업인들 뻔하잖아."
"주인이 관심 좀 끌려고 처먹였겠지. 저것도 다 동물학대라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로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었을까?
물론 정말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누가 알까?
청년은 정말로 할머니를 이성으로서 사랑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장은 기발한 사업 아이디어와 피나는 노력으로 대박을 쳤던 것일지도 모른다.
고양이는 천하의 먹보인데다 이상하게 살이 많이 찌는 체질에 게으름뱅이였을지도 모른다.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기 전까지는,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물론 이 모든 것들이 내 순진한 추측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내 추측보다는 즉흥적인 대답들 - 그야말로 '자기 수준에 끌어다 맞춘' 생각들이 일반 대중에게는 훨씬 잘 먹힌다는 점.
그리고 잘 먹히는 이야기는 언젠가 '진실'로 변해 버린다.
"저 청년 돈 때문에 결혼했다네요."
"저 사장 탈세해서 지금 구속됐대요."
"저 고양이 주인 동물학대로 잡혀갔대요."
이런 이야기가 사실의 탈을 쓴 채 버젓이 떠도는 것이다.
난 이런 이야기들을 사실로 믿느니, 차라리 머릿속의 모든 의문을 의문인 채로 남겨놓고 싶다.
적어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는. 찝찝해서 밤잠을 못 이루는 한이 있더라도.
차라리 궁금해 미쳐버릴지언정, '그런 수준'으로 전락하진 않겠다.